전기차가 환경 친화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실제 탄소배출량은 어떨까요? 주행 중에는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아 무공해 차량으로 여겨지지만, 전기차의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실제 탄소배출량을 비교하고,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전기차가 진정한 탄소중립 솔루션이 되기 위한 조건과 과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탄소배출량 비교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1. 생애주기 평가(LCA)의 중요성
생애주기 평가는 제품의 생산,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전기차의 경우 주행 중 배출량은 0이지만, 차체 생산, 배터리 제조, 전기 생산, 폐기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배출됩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15만km 운행했을 때 전체 탄소발자국은 약 17톤으로, 내연기관차(38.7톤)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기차 탄소배출 내역: 차체 생산 34%(5.7톤), 배터리 제조 31%(5.3톤), 전기 사용 35%, 주행 중 0%
내연기관차 탄소배출 내역: 차체 생산 18%(7톤), 연료 생산 18%(7톤), 주행 중 64%(24.8톤)
이처럼 전기차는 주행 과정에서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생산 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합니다. 특히 배터리 제조 과정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2. 국가별 전력 생산 방식에 따른 차이
전력 생산 방식은 전기차의 실제 탄소배출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석탄 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전기차의 환경적 이점이 크게 줄어듭니다.
블룸버그NEF(BNEF)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국가별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생애주기 탄소배출량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 전기차 9.36 미터톤 vs 내연기관차 32.46 미터톤 (71% 감소)
미국: 전기차 23.67 미터톤 vs 내연기관차 57.66 미터톤 (59% 감소)
독일: 전기차 19.32 미터톤 vs 내연기관차 44.01 미터톤 (56% 감소)
중국: 전기차 29.52 미터톤 vs 내연기관차 40.68 미터톤 (27% 감소)
중국의 경우 석탄 발전 의존도가 높아 전기차의 탄소 감축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영국에서는 감축 효과가 훨씬 큽니다. 국제클린운송위원회(ICCT)는 재생가능 에너지만으로 전기차를 충전할 경우 탄소배출량을 내연기관차 대비 20%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3. 배터리 생산의 환경 영향
배터리 생산은 전기차의 탄소발자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70kWh 용량의 전기차 배터리 한 대를 생산하는 데 약 4.2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세계 배터리 수요가 약 1.6TWh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로 인해 약 9,6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배터리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원료 광석의 품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앞으로 배터리 생산에 따른 환경 부담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배터리 원료 채굴과 제련 과정에서 환경 오염과 인권 문제도 발생합니다. 2016년 국제앰네스티와 아프리워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동 노동 문제를 고발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채굴된 코발트가 중국과 한국의 배터리 부품업체를 거쳐 자동차와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4. 차량 크기와 배터리 용량의 영향
차량 크기와 배터리 용량도 전기차의 탄소배출량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형 전기차나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효율적인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맨하탄연구소의 Mark Mills는 2023년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배터리 용량의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고급 하이브리드 차량과 비교했을 때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탄소배출량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2019년 국제에너지기구(IEA)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적으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30% 적은 탄소를 배출하지만, 하이브리드 차량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10%에 불과합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순수 전기차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탄소배출 성능을 보이기도 합니다.
5. 폐배터리 처리 문제
폐배터리 처리는 전기차 확산에 따라 점점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2029년 국내에서만 8만 대의 폐배터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폐배터리는 폭발 위험이 있고 유해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단순 폐기가 불가능합니다. 재활용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재활용 기술은 자연에서 금속을 채취하는 것보다 3845%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 결과 1620%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맨하탄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까지의 배터리 생산 증가를 고려할 때 배터리 재료의 재활용률은 1~2%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재활용을 통한 환경 부담 감소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전기차의 진정한 환경 영향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전기차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1. 재생에너지 확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는 전기차의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로 충전할 경우, 전기차의 탄소배출량은 내연기관차의 20% 수준까지 낮아질 수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전기화, 효율화,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 활용 및 저장(CCUS), 생활방식 변화, 수소, 원자력과 연료전환 등 8가지 중추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2. 배터리 기술 혁신
배터리 기술 혁신은 전기차의 환경 영향을 줄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에너지 밀도를 높이며,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지난 7월 8일 발표된 K-배터리 발전전략에서 정부는 파격적 투자 인센티브,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 폐배터리 재활용 활성화 등 전 과정을 아우르는 포괄적 지원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배터리 생산과 재활용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3. 효율적인 차량 설계
효율적인 차량 설계는 전기차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배터리 크기를 최적화하는 데 중요합니다. 차량 경량화, 공기역학적 설계 개선, 에너지 회수 시스템 강화 등을 통해 같은 배터리로 더 먼 거리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 고급 전기차보다 효율이 좋은 소형 하이브리드 차량이 실제 탄소배출량이 적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차량 크기와 용도에 맞는 적절한 배터리 용량 선택이 중요합니다.
4. 다양한 친환경 기술의 공존
다양한 친환경 기술의 공존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현실적인 경로일 수 있습니다. 순수 전기차,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 연료전지차 등 다양한 기술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공존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삼성증권의 2023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로 자동차를 전환하는 데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은 e-Fuel(재생합성연료)로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37%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효율화된 내연기관도 탄소중립 시대에 여전히 역할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체 생애주기에서 약 30~70% 적은 탄소를 배출하며, 특히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큽니다. 그러나 '무공해 차량'이라는 인식과 달리, 전기차도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탄소를 배출합니다.
전기차가 진정한 친환경 솔루션이 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배터리 기술 혁신, 효율적인 차량 설계, 그리고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발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전력 생산 방식, 차량 크기, 주행 거리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고 험난합니다. 신재생에너지가 뒷받침하는 배터리 전기차, 포집된 탄소와 청정수소를 합성한 e-Fuel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그리고 하이브리드 기술 등 다양한 솔루션이 공존하는 미래를 위해 냉정하고 합리적인 평가와 전략이 요구됩니다.
전기차 탄소배출량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소비자들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하고, 정책 입안자들이 더 효과적인 환경 정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할 때, 전기차는 그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